첫 번째 탈북이 실패로 끝난 2000년 어느 날 김성렬 씨(37)는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는 수용소에서 생각에 빠졌다. 약 일주일 동안 감옥에서 받은 고문은 존경했던 지도자를 '폭력배'로 다시 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탈북의 동기였던 생활고는 애당초 집권층의 잘못이었다. 김씨는 이 같은 모순 속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자문하고 또 자문했다.
17일 매일경제와 만난 김씨는 "그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고난의 행군 탓에 도강했다 잡힌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으로 돌아갔다"며 "이전에 살고 있던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두 번의 탈북 시도 끝에 그해 8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이후 약 4년간 중국 톈진 등에서 지내다가 라디오에서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남한으로 가 공부하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주에 있는 시러큐스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곳이다. 김씨는 미국 생활 약 3년6개월 만에 북한의 대미정책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했다. 그에게 공부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북한에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남한으로 오기 전까지의 삶은 오로지 육체노동으로만 점철돼 있었다"며 "하나원을 나와 대안학교를 다니며 약 1년3개월 만에 검정고시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2007년 한동대에 입학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부량이 너무 많아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면 돌파했다"고 덧붙였다.
영국과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은 편견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부산의 한 공장에서 약 3개월 동안 용접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영국에서 3개월 동안 지냈다. 또 내 사연을 안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도 약 1년 있었다"며 "미국 생활 중 처음 한 달 동안은 북한에서 배운 미국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거리를 나서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다 현지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 같은 인식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2015년 맺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과의 인연은 김씨에게 천운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김씨가 해외 유학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 회장은 자신이 2010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을 통해 필요한 등록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에서 비자를 거절당하는 바람에 그는 영국 셰필드대로의 유학을 접었다. 대신 연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씨는 "유학이 좌절되면서 지원금을 전액 돌려드렸는데 (김 회장이)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고 들었다"며 "이후 따뜻한동행의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정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미국 유학에 필요한 등록금과 생활비 등도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따뜻한동행은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주로 펼치고 있지만 탈북민에 대해서도 사회·문화적 장애를 입었다고 판단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탈북 청년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월북하거나 범죄에 연루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며 "정부는 이들이 잠재력을 보일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씨와 만난 김 회장도 "탈북 청년 중에서도 통일시대의 리더가 나와야 한다. 김 박사가 탈북 청년들의 성공 모델로서 많은 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줬다"고 탈북민과 김씨를 응원했다.
출처 : 매일경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