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 가사 연습해오셨죠?” “긍께 그것이….” “숙제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 아녀?”
교실에 모여 앉은 ‘가람반’ 학생들이 교사 최영서(22)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평균나이는 70세. 연필을 쥔 손들엔 주름이 가득하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자부하는 광주 ‘희망야학’ 수업현장이다.
희망야학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을 위한 학교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밤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대학생 교사 30여 명, 늦깎이 학생 50여 명이 함께 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한글 기초반인 가람반부터 초등학생 과정인 양지반·희망반, 중학생 과정인 한뜻반, 고등학교 과정인 청솔반까지 5개 반으로 구성돼 있다.
●배움을 향한 식지 않는 열기
희망야학은 1968년 화순에서 시작됐다. 한때는 개교와 폐교를 반복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1988년 광주 계림동에 자리 잡았다.
낡은 건물에서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언뜻 보면 학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건물에 ‘광주 희망야학’이라는 초록색 간판이 걸려있다.
내부도 외부만큼이나 오래됐다. 아귀가 맞지 않는 나무문 사이로 수업 소리가 새어 나온다. 8평 남짓한 작은 교실이다. 교실을 데우는 것은 석유 난로 하나. 전기 히터를 돌리면 두꺼비집이 못 버틴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교사와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만큼은 어느 학교에 비할 수 없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늦깎이 학생들의 공부 열기는 활활 타오른다.
대학생 교사 최영서 씨가 “다 같이 발음을 따라해볼까요? 스트레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입니다”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단어를 음미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레 따라한다.
늦은 밤 이어지는 수업에도 누구 하나 졸거나 한눈 파는 학생은 없다. 교재엔 삐뚤빼뚤 눌러쓴 필기가 빼곡하다.
●늦깎이 대학생 희망 등불이 되다
희망야학 덕분에 늦깎이 학생들은 희망을 품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동명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최지숙(가명)씨는 나이 70이 넘어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처음으로 이름을 쓸 줄 알게 됐다. 항상 걷던 평범한 길도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제는 남들에게 묻지 않고도 간판을 읽을 수 있다.
최씨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편지 한 장 써보고 싶어 아직은 쑥시러워서 아무한티도 못보냈어. 2020년에는 수업 열심히 들어서 꼭 편지를 보내야제.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서 정말 고마워”라고 했다.
늦깎이 학생들이 이처럼 늦은 나이에 꿈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열정페이’를 자처하는 대학생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다.
대학생 교사들은 어떠한 보수도 없이 수업과 홍보 포스터 제작, 교무회의, 행사계획까지 모두 처리한다.
시험기간에도 방학에도 예외는 없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학생 교사들은 “오히려 학생 어머니들의 열정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가장 큰 충격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나 높을 수 있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그동안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었구요. 시간을 쪼개 하는 일이지만, 희망야학을 하고 나서 되레 학교 성적이 올랐어요.”
부교무부장 김미언(22)씨의 이야기다.
●’희망야학’이 말하는 희망야학은
희망야학을 함께 만들어가는 늦깎이 학생과 대학생 교사들. 그들에게 희망야학은 어떤 의미일까.
조윤아 교사는 ‘디딤판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수업을 하면서 느껴지는 학생들의 열정과 매일 수업 끝에 듣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항상 더 감사함을 느낀다”며 “힘든 점도 있었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대승 교사는 학생들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라고 표현했다. 김승지 교사는 ‘부지런하게 만드는 따뜻한 곳’이라고 했다. 손유경 교사는 ‘올해 제일 잘했던 일’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어디가서 말도 못했는데 이제는 가족들에게도 자랑스럽다. 선생님들은 학교 공부시간도 빼서 봉사하는데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며 “선생님들 노력에 보답할 수 있게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보고 시도 쓰고 평소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도 편지로 전해보고 싶다. 희망야학은 늦은 나이에 꿈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준 희망의 등불”이라고 했다.
* 출처: 전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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