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전 육성회비를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이제서야 꿈을 이뤘습니다.”
27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의 남인천중·고등학교. 까까머리 소년시절, 가난하다는 이유로 등이 떠밀려 학교를 나와야 했던 박칠봉씨(64)가 학사복을 입고는 연신 눈물을 글썽인다. 박씨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나중에 어른되면, 돈 벌어서 육성회비를 꼭 갚겠다’고 선생님께 매달리기도 했다”며 “그때는 육성회비를 내지 않으면 학교에 다니질 못하니까, 결국 학교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중학교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 건설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학력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 켠에는 학교생활에 대한 동경을 놓지 못했다.
박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입학했다”며 “학교생활이 너무 소중해서 졸업식이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 소년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박씨는 그렇게 평생의 숙원이던 졸업장을 품에 안고 학교를 나섰다.
이날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인 남인천중·고에는 만학도 461명에 대한 눈물의 졸업식이 열렸다. 코로나19로 반대표 30명만 현장에 참석했고, 나머지 431명은 집에서 화상 채팅으로 졸업식에 참여한 뒤 오후에는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차에 탄 채로 졸업장을 받던 몇몇 졸업생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누르며 차에서 내려 고개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날 최고령인 임재석씨(87)는 중학교 과정을 졸업했다. 임씨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이라는 풍파를 모두 겪어야 했던 세대라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했다. 임씨는 “초등학교도 나오질 못하다보니까 어디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늘 일용직을 전전하기만 했다”며 “아내가 죽고 나서 지금이라도 못이룬 꿈을 이뤄보자고 결심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간절했던 배움인 만큼 임씨는 늘 오전 5시면 학교에 왔다. 배운 것들을 다시 복습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제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고교 자격도 받고 실버대학도 다니면서 영어와 수학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자 고교 2학년 과정에 다니는 만학의 후배들이 ‘인생은 60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는 선배들의 더 나은 미래를 응원한다.
만학도 6천888명을 배출한 남인천중고의 윤국진 교장은 “코로나19 속에서 모든 어려움을 배움에 대한 열정과 용기로 극복하고 꿈을 이룬 우리 졸업생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인간 승리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졸업생들이 이 용기를 계속이어나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출처 :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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